대기업들, "'최순실' 존재 몰랐다"

카테고리 없음|2017. 6. 18. 11:26


조건 단 기업 거절한 최순실

삼성 “청탁하지 않아 자금출연” 합리적 주장

삼성도 ‘마찬가지’ “최씨 정체·영향력 몰랐을 것” 증언 속출

최순실, 자금 출연 대신 조건 달았던 대기업 모두 거절·출연금 반환

삼성 측 “대가 원치 않았기에 돈 돌려받지 않았다” 주장


   삼성 재판에 삼성에 대한 내용이 등장하지 않은 덕분에, 삼성 측이 든든한 대응논리를 마련했다. 국정농단 사태의 주역 최순실(61·구속기소)씨가 실제로 설립·운영을 주도한 것으로 밝혀진 더블루케이(K)와 케이(K)스포츠 재단 전 임원들이 삼성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해 이들 재단이 다른 대기업에 자금 출연 요청을 했던 사례를 상세히 증언하며, 삼성이 다른 대기업들과 다른 바 없이 최순실 국정농단의 피해자였다는 주장에 힘을 실어줬기 때문이다. 


특검 측이 신청한 증인의 증언 덕분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측이 유리한 대응논리를 

만들었다. (사진=연합)

edited by kcontents


지난 12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부장판사 김진동) 심리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 삼성 전·현직 임원들의 뇌물공여 사건 제27차 공판이 열렸다. 이날 오후 재판에는 더블루K의 전 대표 조 모씨와 K스포츠 재단 전 사무총장 정 모씨가 증인으로 출석했다. 


두 사람은 더블루K와 K스포츠 재단 모두 최순실씨가 실제로 설립·운영한 법인이었으며, 최씨의 지시로 다수의 대기업들로부터 거액의 출연금을 받아냈다고 증언했다. 


그 과정에서 안종범(58·구속 기소) 전 청와대 경제수석과 김종(55·구속 기소) 등 정부 인사들의 협조가 있었고, 대기업들이 설립된 지 얼마 안 된 소규모 법인에 거액의 자금을 출연하는 등 쉽게 납득할 수 없는 일이 다수 있었다고 폭로했다.


그런데 이날 두 증인의 재판에서는 피고인석과 방청석에서 여러 번 실소가 터져 나왔다. 특검 측의 증인신문 과정과 이에 대한 증언 내용 중에서 ‘삼성’이라는 단어를 거의 찾아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특히 정 전 사무총장은 삼성 측 변호인들의 반대신문이 시작되기 전 재판부에 조심스레 질문을 던지며 “재판장님 오늘 여기 온 이유 중에 제가 이해를 잘 못하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혹시 제 오른쪽(피고인석)에 계신 분들이 삼성 분들인가”라며 “오늘 삼성 관련 재판이라는 이야기를 듣지 못했다”라고 의문을 표했다. 


이어 정 전 사무총장은 “(K스포츠) 재직 중 삼성과 지원요청 건으로 따로 접촉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고 설명했다. 


증인조차 자신이 어떤 재판으로 출석했는지 재판이 한창 진행되는 와중에도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것에 소재판정의 방청석은 순간 술렁였다. 


특히 삼성 재판임에도 삼성에 대한 내용이 변호인 측 신문과 이에 대한 증인 신문 과정에서만 간단히 언급됐을 뿐, 검사 측 신문 진행 내내 삼성이 거론된 경우가 조 전 대표의 신문에서 한 번밖에 없었다. 


때문에 삼성 측 변호인들도 검찰 측 신문 사항에 한해 반대신문을 해야 하는 만큼, 더블루K와 K스포츠 재단에 자금을 출연한 기업의 관계자들이 최순실씨를 인지했는지 여부, 최씨와 미르재단, 더블루K, K스포츠 재단과의 관계 그리고 이들 법인과 GKL(그랜드코리아레저), KT, 포스코, 부영, 롯데 간 협상 과정 등 삼성 측 변호와는 전혀 상관없는 내용에 대해서만 질문할 수밖에 없었다. 


삼성 측 변호인들은 조 전 대표에 대한 신문을 마친 뒤 “저희는 피고인들이 다투지도 않고 있는 국정농단 부분에 관해 특검 측이 왜 증인신청을 하셨는지 이해를 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심지어 특검 측은 이날 검사 측 신문 결과를 밝히면서, 최씨의 지시와 개입으로 재단이 설립 및 운영됐고 그의 지시사항과 안종범 전 수석의 지시가 동일했다는 정황을 밝혀냈다고 말했다. 


또 두 증인들의 증언으로 최씨와 박근혜 전 대통령이 재단 운영에 관해서는 공모 관계이며, 안 전 수석이 이들의 공모 관계를 위한 박 전 대통령의 지시사항을 충실히 이행하려 했다고 설명했다. 아쉽게도 삼성과 관련된 이야기는 전혀 하지 않았다. 


해당 사건의 재판이 일주일에 3차례나 열리고 있고, 아직 증인과 서증조사가 많이 쌓여있는 만큼, 재판이 종료된 후 재판정 밖에서는 특검 측의 이날 증인 요청이 적절하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이날 재판은 삼성 측 입장에서 전혀 의미가 없었던 시간만은 아니었다. 재판에서 더블루K와 K스포츠 재단에 자금을 출연한 것으로 거론된 기업들의 사례를 통해 ‘삼성만이 기소될 이유가 전혀 없었다’라는 명백한 대응논리를 마련했기 때문이다. 




삼성도 다른 대기업들처럼 최순실 영향력 인지 못해

우선 삼성 측 변호인단이 조 전 대표와 정 전 사무총장에 공통적으로 던진 질문은 더블루K와 K스포츠 재단에 자금을 지원한 대기업들이 최순실씨의 존재를 알고 있었냐는 점이었다. 


삼성 측은 청와대 측에서 ‘공적인 목적으로 설립한 줄로만 알았던’ 최씨 측 법인에 자금을 지원해달라며 보이지 않는 강요를 해 이를 실행했을 뿐, 자금을 출연하는 대신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에 최씨나 청와대가 힘을 써주도록 하는 대가성 목적이 전혀 없었다는 주장해 오고 있다. 


특히 삼성은 이재용 부회장이 최씨를 전혀 몰랐고, 때문에 그의 영향력이나 대통령과의 관계 또한 인지하지 못했다는 주장이다.


삼성 측은 미르,K스포츠,더블루K 등 최순실씨의 법인에 자금을 출연한 다른 대기업들이 최씨의 존재나 영향력을 몰랐듯이 이재용 부회장도 마찬가지라는 입장이다. (사진=연합)

이날 재판에서도 드러났고 그동안 언론보도 등을 통해 밝혀진 사실이지만, 최씨는 법인을 설립 및 운영하면서 주변인들에게 자신의 존재를 극도로 숨겼다.


실제로 최씨는 자신의 통화내역을 숨길 목적으로 대포폰을 이용했고, 이메일 이름 역시 최순실 또는 최서원이 아닌 가명으로 등록해 사용했다. 


미르·더블루K·K스포츠 재단도 다른 사람을 명목상 대표이사로 내세웠고, 이 법인의 소속 직원들 다수는 최씨의 존재에 대해 ‘회장님’이라고 알고 있을 뿐 정확한 신상이나 심지어 이름조차 모르고 있었던 이들도 있었다. 


정 전 사무총장도 “최 회장(최순실)의 이름을 알 게 된 것이 같이 일을 하고 한 참 후에 알게 됐다”라며 “솔직히 최 회장에 대해 아직도 잘 모르겠다”라며 최씨가 주변인들에게 철저히 자신의 정체를 숨겼다는 주장에 동의했다. 


심지어 이날 재판에서는 안종범 전 수석조차 최씨를 잘 몰랐을 것이라는 증언도 나왔다. 조 전 대표는 K스포츠 입사 초창기 법인의 감사 직책을 맡게 됐을 때, 안 전 수석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고 증언했다. 두 사람은 전화로 인사를 나눴고, 조 전 대표는 안 전 수석에게 열심히 하겠다고 말한 것으로 나타났다. 


며칠 뒤 최씨는 조 전 대표에게 감사가 아닌 재무이사로 직책을 변경하라고 지시했고, 곧바로 안 전 수석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와 최씨와 똑같이 K스포츠의 재무이사를 맡아 달라는 부탁을 전달받았다. 


당시 조 전 대표가 “(재무이사 관련) 이야기를 들었다”라고 말하자, 안 전 수석이 “어디에서 누구에게 들었나”라고 되물었다. 


조 전 대표는 그때까지도 최씨의 실명을 모르고 있었기 때문에 “재단 업무에 관해 전달해주시는 여자 분이 계시지 않는가”라고 말하자, 안종범 전 수석은 이를 전혀 모르고 있었다는 듯 “그래요?”라고 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조 전 대표와 정 전 사무총장 모두 최씨가 안종범 전 수석처럼 대기업 관계자들과 만나는 인물과 직접적으로 연락을 취하지 않고, 그가 안종범 전 수석보다 윗선에 있는 청와대 비서실이나 박 전 대통령을 통해 안 전 수석에게 자신의 지시가 전달될 수 있도록 한 것 같다고 증언했다.


때문에 조 전 대표와 정 전 사무총장이 각각 더블루K와 K스포츠 재단에 자금 출연을 부탁하기 위해 만났던 대기업 관계자들 역시 안종범 전 수석을 알고 그와 접촉한 뒤 재단 일에 협조한 것을 사실이지만, 최씨의 존재를 전혀 알지 못했다고 증언했다. 


이에 삼성 측도 다른 기업들과 같이 당시 최씨의 존재와 영향력, 그의 박근혜 전 대통령과의 관계 등에 대해 모르고 있던 것은 마찬가지라는 입장이다. 


삼성 측 변호인은 “조 전 대표의 증언을 통해 살펴보면, 최서원(최순실)은 대외적으로 자신을 나타내려 하지 않았던 것이 더욱 명백해졌다”라며 “GKL이나 포스코, KT뿐만 아니라 저희 삼성도 재단 설립과 출연금 지원 배후에 최서원이 있었다는 점을 강력히 주장한다”고 말했다. 




“삼성이 대가를 원했다면, 최순실이 자금 출연을 거부했을 것” 정황도 드러나

정 전 사무총장의 이날 재판 증언에 따르면, 지난해 2월 최씨는 K스포츠 재단을 통해 ‘5대 거점 체육인재 육성 사업’을 추진하면서 대기업들로부터 자금을 출연하라는 지시를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로 최씨는 5대 거점 체육인재 육성 사업을 통해 경기도 하남시에 대한체육회가 보유하고 있던 부지를 매입하고 체육시설을 건립해, 이곳에서 아시안게임과 올림픽에 출전할 체육 선수를 육성한다는 명목으로 대기업으로부터 자금을 받을 계획이었다. 


최씨는 지난해 검찰 조사 과정에서 이 사업의 실체에 대해 인정한 바 있다. 그는 검찰 측에 5대 거점 체육인재 육성 사업의 기획안을 정호성(48·구속기소) 전 청와대 비서관을 통해 박근혜 전 대통령에 전달한 사실이 있다고 진술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최씨는 대기업에 자금 출연을 강요했고, 그 과정에서 기업 압박의 수단으로 청와대의 도움을 받았다는 의혹에 대해서는 여전히 부정하고 있다. 


정 전 사무총장은 이런 최씨의 주장이 사실과 다르며, 자신이 지난해 2월 26일 최씨의 지시로 이 사업을 위한 대기업 출연금을 요구하기 위해 부영그룹의 이중근 회장을 만난 적이 있다고 증언했다. 


정 전 사무총장은 이날 약속자리에 안종범 전 수석이 동행해 줬고, 이 회장에게 5대 거점 체육인재 육성 사업에 대해 설명하며 체육시설 건립을 위한 건축비 명목 자금 지원을 요청했다고 회상했다. 


정 전 사무총장은 이중근 회장에게 “(체육시설) 1개 거점이 대략 70억~80억원에 달하며, (부영그룹이) 건설사라고 해서 시설건립이 아닌 재정적 지원을 부탁하는 것”이고 말했다며, 당시 이중근 회장에게 전달한 내용의 취지에 대해 구체적으로 증언해줬다.


정 전 사무총장 등의 요구에 이중근 회장은 “최선을 다해 도울 수 있도록 하겠다. 다만, 현재 세무조사를 받고 있는데 이 부분을 도와줄 수 있는지 모르겠다”라며 부탁을 받아들이되, 안종범 전 수석을 향해 당시 자신과 부영그룹에 들어온 세무조사를 완화해 달라는 조건을 간접적으로 제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정 전 사무총장도 그때 상황을 떠올리며 “(이중근 회장이) 억울하거나 불합리하다고 하면서, 이것(세무조사 완화)이 고려가 될 수 있는지 물어봤다”라고 설명했다. 


이후 정 전 사무총장은 최씨에게 이중근 회장과의 면담 내용을 보고하면서, 이 회장이 세무조사 완화를 부탁했다고 전달했다. 


그러자 최씨는 “그런 조건이 있다면, (부영 자금은) 받을 필요가 없다”라며 이 회장의 제안을 거부하고 부영그룹에 대한 자금 출연 요청도 더 이상 진행하지 말라고 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어 최씨는 롯데 측에 이 사업을 위한 자금 출연을 요청할 것을 지시했다. 지난해 3월 14일 최씨는 정 전 사무총장에게 “롯데 측 사람과 이야기가 됐다”라며, 롯데그룹의 관계자들을 만나보라고 연락했다. 


같은 날 청와대에서는 박근혜 전 대통령과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독대가 있었고, 특검 측이 압수한 안종범 업무수첩의 3월 14일자 페이지에는 ‘인재양성’, ‘5대거점’, ‘하남시’, ‘시설 75억’, ‘K스포츠’라는 내용이 명시돼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3월 17일 정 전 사무총장은 당시 박헌영 전 K스포츠 재단 과장과 함께 서울시 소공동 롯데 본사로 향해 소진세 롯데 사장 등을 만나 5대 거점 체육인재 육성 사업을 설명하며, 자금 지원을 요구했다. 


며칠 후 박헌영 전 과장과 고영태 전 더블루K 이사가 롯데에 찾아가 구체적 사업 설명을 했고, 결국 롯데그룹은 5월 25일부터 31일까지 K스포츠 재단에 70억원 송금을 완료했다. 


그런데 6월 7일 K스포츠는 롯데 측에 ‘부지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라는 이유로 이 돈을 롯데 측에 9일까지 전액 반환했고, 10일 검찰이 롯데그룹의 대대적인 압수수색을 펼쳤다. 


정 전 사무총장은 이것 역시 당시 롯데 측에 70억원을 돌려주게 된 것도 최씨의 지시였다고 증언했다. 때문에 재판 후 일각에서는 롯데 측이 K스포츠 자금 지원을 대신해 검찰 수사 무마라는 조건을 걸었고, 최씨가 부영의 경우처럼 이 조건을 거부해 돈을 반환한 것이라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삼성 측 변호인들은 이날 재판에서 밝혀진 부영과 롯데 측의 사례처럼 최씨가 자금 출연 요구에 조건을 달았던 기업들과는 그 조건을 거부하거나 사업 추진을 중단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만약 자신들이 최씨 측 법인에 자금을 지원하는 대신 세무조사 완화 그리고 검찰 수사 무마보다 훨씬 더 규모가 큰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에 청와대가 힘을 써달라는 조건을 달았다면, 애초부터 최씨가 그 조건을 거절하면서 재단 자금 출연 기업 명단에도 삼성이 포함될 일이 없었다는 설명이다. 


삼성 측 변호인은 “최순실은 부영의 세무조사 완화의 예처럼 지원 기업이 어떤 대가를 요구하거나, 향후 대가를 요구할 가능성이 있다면 이를 거절하고 지원받은 돈을 돌려준 정황이 드러났다”라며 “K스포츠 재단에 실제로 자금을 출연한 기업들이 어떤 대가를 바랐다기보다는 모두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의 피해자로 저희 삼성그룹 역시 크게 다를 바가 없다”라고 설명했다. 


이날 삼성의 혐의 입증에 맞춰져야 할 재판에서 특검 측이 얻어간 부분은 최씨와 박 전 대통령 간 공모관계 입증에 한발 짝 더 다가갔다는 점이었다. 


반면, 삼성 측은 의외의 증인들로 인해 자신들은 다른 기업들과 다를 바 없는 피해자였다는 부분에 대해 다수의 방청인들에게 공감을 얻었고, 동시에 특검 측이 삼성의 미르 및 K재단에 출연한 204억원을 뇌물공여로 보고 기소했다는 점에 대해 ‘강요에 의한 출연’이 더욱 명백해졌다고 주장했다. 

한민철 기자 kawskhan@hankooki.com 주간한국

케이콘텐츠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