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만 해서는 절대 살 못 뺀다!



운동은 건강과 활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고 체중을 관리하려면 식습관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 허먼 폰처


굶주림(허기)에 맞서 싸울 생각은 말아야 한다. 대신 체중관리에 성공하기 위한 열쇠는 애초에 허기와 식욕이 일어나지 않게 하는 것이다.

- 수전 로버츠 & 사이 크루파 다스

 

출처 Today Sh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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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비결이 뭐예요?”


노출의 계절이 다가오면 필자는 여성들로부터 이런 얘기를 자주 듣는다. 살 빼는 문제로 고민하고 있는데 필자처럼 날씬한 사람을 보니 남자임에도 부러운가보다. 아무튼 이런 얘기를 들으면 “난 저체중이고 당신들이 정상”이라고 답하면서도 나름 비결을 말해주는데 다들 어렵겠다며 고개를 젓는다.


필자의 비결이란 사실 단순한데 ‘하루 세끼만 먹고 목마를 땐 물을 마신다’가 전부다. 즉 간식이나 야식을 먹지 않고 청량음료나 주스를 마시지 않는다. 프리랜서가 된 뒤로는 일찌감치 여섯 시쯤 저녁을 먹기 때문에 다음날 아침을 먹을 때까지 열세 시간 정도는 음식을 입에 대지 않는다. 필자가 이런 식습관을 갖게 된 가장 큰 이유는 한여름에도 이불을 덮지 않으면 배탈이 날 정도로 소화계가 약하게 타고 났기 때문이다. 운동이라야 하루 두 시간 정도 걷고 팔굽혀펴기를 100번 정도 하는 게 전부다.


아무튼 이런 얘길 들은 여성들은 대체로 “그렇게는 못 하겠다”며 대신 운동을 더 열심히 해 살을 빼야겠다는 결론을 내리곤 한다. 오늘 밤 치맥을 먹는 대신 내일 러닝머신을 한 두 시간 뛰면 되는 거 아니냐는 논리다. 그러면 필자는 “운동은 힘만 들지 살 빼는 덴 별 효과가 없다”며 식습관이 중요하다고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이미 설득력은 없어 보인다. 그만큼 사람들은 운동이 식습관만큼이나 심지어 그 이상으로 살을 빼는데 효과가 있다고 믿고 있는 것 같다.

 

탄자니아의 하드족 남자들은 매일 수십km를 이동하는 생활을 하지만 하루 칼로리 소모량은 정적인 생활을 하는 선진국의 

사람들과 비슷하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운동으로 칼로리 소모량을 늘려 살을 뺀다는 전략이 별 효과가 없다는 증거다. 

위키피디아 제공


운동으로는 200칼로리가 한계

날씬한 몸매 하면 떠오르는 김연아 선수와 손연재 선수를 보자. 다들 알겠지만 선수 시절 두 사람의 운동량은 엄청나 사실상 하루 종일 몸을 혹사시켰다. 그러나 두 사람 모두 가장 힘들었던 건 식사량 조절이라고 말했다. 그렇게 운동을 하고도 조금 과장해서 새 모이만큼 먹어야 날씬한 몸매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이다. 제아무리 열심히 운동한다고 해야 선수 시절 두 사람의 운동량의 절반도 못 미칠 사람들이 치맥을 먹으며 ‘다음날 운동해서 빼면 되지’라고 생각하는 게 터무니없는 이유다.


사실 과학자들도 최근까지 운동이 살을 빼는 데 꽤 효과가 있다고 생각했다. 운동을 하면 심장박동이 빨라지고 호흡이 가빠지는데 다들 근육에 더 많은 산소를 공급하기 위해서다. 이 산소는 세포 내 미토콘드리아에서 포도당을 태워(산화시켜) 에너지 분자인 ATP를 만드는데 쓰인다. 결국 운동을 많이 할수록 우리가 먹은 음식물 또는 몸에 저장된 글리코겐이나 지방이 더 많이 소모되므로 당연히 살이 빠질 수밖에 없는 것 아닌가. 실제 쉬고 있을 때와 운동을 할 때 에너지 소모량은 후자가 당연히 더 높다.


그런데 하루 24시간 단위로 에너지 소비량을 측정하자 이상한 결과가 나왔다. 칼로리를 소모하는데 운동의 효과가 생각보다 크지 않았고 그나마 어느 수준이 지나면 더 이상 효과가 나지 않았던 것이다. 예를 들어 온종일 소파에서 뒹굴며 TV를 보며 보내는 사람이 필자처럼 적당히 활동하는 생활로 바꿔도 하루 에너지 소모량이 200칼로리 정도 더 늘 뿐이다. 이걸로 부족하다며 헬스클럽에서 열심히 땀을 빼도 하루에 소모되는 칼로리는 더 이상 늘어나지 않는다.




미국 헌터대의 인류학자 허먼 폰처 교수는 이런 현상을 ‘운동 역설(exercise paradox)’라고 부른다. 스포츠생리학자가 아니라 인류학자가 ‘무슨 자격으로’ 운동이 살 빼는데 효과가 없다고 주장하며 이런 용어까지 만드느냐고 의아해 하는 독자들이 있을 텐데 이런 실마리가 인류학 연구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20세기 후반 들어 비만이 인류의 건강을 위협하는 문제로 떠오르며 많은 사람들이 그 원인을 다각적으로 분석했고 현대인의 정적 생활 패턴을 주요원인으로 꼽았다. 호모속 인류는 지난 200만 년 동안 수렵채취인으로 상당한 운동량을 유지하며 살았는데 1만 년 전 농업을 시작하며 한번 주춤했고 특히 20세기 들어 몸을 쓰지 않고 살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면서 이런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즉 정적인 생활로 수렵채취인 시절보다 칼로리를 덜 소모하므로 식사량도 줄여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비만이 만연하다는 얘기다.


폰처 교수를 비롯한 인류학자들은 지구에서 수렵채취인이 사라지기 전에 우리 몸이 진화적으로 적응한 생활을 하고 있는 이들의 생리를 정밀하게 연구하기로 했다. 수렵채취인들은 남녀 모두 운동량이 엄청난데 남자는 사냥, 여자는 채집과 가공, 요리를 하느라 오랜 시간 돌아다니고 일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류학자들은 이들의 하루 칼로리 소모량이 정적인 생활을 하는 후기산업사회 사람들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실제로 측정을 한 결과 이들의 하루 칼로리 소모량이 비슷하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예를 들어 탄자니아의 수렵채취인인 하드자족의 경우 남자는 평균 2600칼로리, 여자는 평균 1900칼로리로 비슷한 체격의 미국이나 유럽 사람들과 별 차이가 없었다. 다른 수렵채취인들에 대한 조사에서도 결과는 비슷했고 비교적 육체노동을 많이 하는 저개발국가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즉 우리 몸이 하루에 소모하는 칼로리는 신체활동량에 별로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말이다.


흥미롭게도 다른 동물을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 원숭이와 유인원, 양, 캥거루, 판다 등 여러 동물을 대상으로 하루 칼로리 소모량을 측정한 결과 운동량이 많은 야생동물이나 운동량이 적은 동물원 동물이나 비슷했다. 몸을 움직이면 가만히 있을 때보다 분명 칼로리 소모량이 늘어나는데 어떻게 이런 현상이 일어날까.


폰처 교수는 미국 월간지 ‘사이언티픽 아메리칸’ 2월호에 기고한 ‘운동 역설’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몇 가지 이유를 들고 있다. 먼저 사람을 포함해 동물의 기초대사량이 생각보다 크다는 것이다. 언뜻 보기에 몸을 움직이지 않으면 에너지도 거의 쓰지 않을 것 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즉 심장은 여전히 1분에 60~70회씩 수축과 이완을 반복하고 신장은 24분 주기로 온 몸의 피를 걸러내고 있다. 뇌는 우리가 아무리 ‘멍 때리고’ 있을 때라도 전체 칼로리 소모량의 20%를 쓰고 있다(디폴트모드네트워크가 돌아가고 있다고 말한다).


그렇더라도 어쨌든 운동을 하면 그 양에 비례해 여기서 추가로 칼로리가 소모돼야 하는 것 아닐까. 그런데 왜 200칼로리까지만 늘어나는 것일까. 이에 대해서는 두 가지 설명이 가능한데 하나는 몸의 생리적 대응이고 다른 하나는 행동적 대응이다.


즉 과도한 움직임으로 칼로리가 많이 소모되면 우리 몸은 생리를 조절해 에너지를 아낀다. 예를 들어 운동을 많이 하면 몸의 면역계가 쉬면서 염증반응이 줄어든다. 염증반응 과정에서 관련 세포와 물질을 만들고 열을 내는 등 에너지가 많이 소모되기 때문이다. 또 호르몬 분비가 재조정돼 생식력이 떨어지고 손상된 신체조직을 복구하는 속도도 떨어진다. 즉 기초대사량이 줄어든다는 말이다.


한편 수렵채취인과 함께 생활하며 행동을 면밀히 관찰한 폰처 교수는 이들이 가만히 있을 때는 서있기 보다는 주로 앉아있는 등 무의식적으로 최대한 칼로리 소모를 아낀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또 잠도 쉽게 깊이 들어 에너지 소모가 덜 했다. 논밭이나 공사현장을 지나다 보면 일을 하던 사람들이 점심을 먹고 그 자리에 누워 낮잠을 자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육체노동을 하면 잠이 잘 온다는 건 어쩌면 에너지 밸런스를 맞추기 위한 몸의 적응의 결과일지도 모른다.


폰처 교수는 “에너지는 생물학의 모든 영역에서 핵심”이라며 “삶은 에너지를 자손들에게 전환하는 게임으로, 생물의 모든 특성은 칼로리를 소모할 때 얻는 대가를 최대화하기 위해 자연선택된 결과”라고 설명했다.

 

식욕 조절이 관건

운동이 살 빼는데 별 효과가 없다는 사실에 실망할 수도 있지만 어찌 보면 다행일수도 있다. 하기 싫은 운동을 안 해도 되기 때문이다(운동 마니아가 아닌 다음에야 따로 시간을 내 오랜 시간 운동하는 건 곤욕일 것이고 시간낭비 측면도 있다). 물론 앞에서 인용한 말처럼 건강을 위해서 운동을 적당히 해야 한다. 그런데 살 빼는데 효과가 있다는 다이어트는 다른 고민을 안겨준다. 즉 하고 싶은 걸 하지 말아야 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이성의 동물이라며 의지력을 과대평가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하기 싫은 일을 하는 것만큼이나 하고 싶은 일은 못하는 것도 괴로운 일이다. 시간 싸움에서 의지는 욕구(본능)에 무릎을 꿇게 마련이다. ‘작심삼일(作心三日)’이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다이어트 분야에서는 ‘요요현상’이라고 부른다.


사실 다이어트, 즉 식단을 조절해 살을 빼다는 건 운동보다도 더 직접적이고 명쾌한 방법이다. 운동은 일단 몸에 들어온 걸 빼내는 작업인 반면 다이어트는 들어오는 것 자체를 줄이자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허기와 식욕은 충족되지 못할 때 견디기 어려운 충동이기 때문에 이를 무시한 다이어트는 실패하는 것이다.


따라서 최근 몇몇 과학자들은 허기와 식욕이 일어나는 메커니즘에 주목하고 있고 식습관에 따라 이런 충동의 강도가 꽤 변할 수 있음을 발견했다. 즉 충동을 억누르는 의지력에 의존할게 아니라 충동 자체의 발생을 줄이는 쪽으로 다이어트 전략을 짜야 한다는 것이다. 말은 그럴듯한데 이게 가능한 일일까.


‘사이언티픽 아메리칸’ 6월호에는 ‘체중 감소에 관한 복잡한(messy) 진실’이라는 제목의 기고문이 실렸다. 미국 터프츠대 인간영양연구센터 수전 로버츠 교수와 사이 크루파 다스 박사가 공동 필자로 음식을 제대로 고르면 공복감을 덜 느끼게 돼 지속가능한 다이어트로 살을 뺄 수 있다는 연구결과를 소개하고 있다.


이들은 임상 참가자들에게 평소 허기를 얼마나 자주 느끼는지에 대한 설문조사를 한 뒤 두 그룹으로 나눠 한쪽은 단백질과 식이섬유가 풍부하고 혈당지수가 낮은 음식들(생선, 콩, 사과, 채소, 닭가슴살, 통밀 등) 위주로 식단을 짜 주고 충실히 실천하라고 알려줬고 다른 그룹은 대기자라고 알려줬다(즉 대조군이다). 실험군은 매주 모여 정보를 주고받는다. 6개월이 지난 뒤 참가자들을 불러 다시 설문결과를 하자 실험군은 허기 수준이 많이 떨어졌다. 게다가 체중이 평균 8㎏이나 빠졌다. 반면 대조군은 허기에 별 차이가 없었고 체중은 그 사이 0.9㎏ 늘었다.




혈당지수는 섭취한 음식이 몸에서 포도당으로 전환되는 속도를 나타내는 지표로 혈당지수가 높은 음식일수록 짧은 시간에 급격히 혈당을 올리는 대신 얼마 못가 뚝 떨어진다. 반대로 혈당지수가 낮은 음식일수록 혈당 상승과 하락이 완만하다. 똑같은 칼로리를 섭취하더라도 혈당지수가 낮으면 그만큼 포만감이 오래 간다. 실제 아침에 동일한 칼로리를 섭취하더라도 혈당지수가 높은 음식을 먹은 그룹이 낮은 음식을 먹은 그룹에 비해 이후 하루 동안 칼로리를 29% 더 섭취한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한편 동일한 음식이라도 먹는 시간대에 따라 허기를 느끼는데 큰 차이가 나는 것으로 밝혀졌다. 즉 하루 섭취량을 성인 여성 기준의 70% 수준인 1400칼로리로 제한하는 다이어트 실험을 하면서 한 그룹은 아침에 700, 점심에 500, 저녁에 200칼로리를 먹게 하고 다른 그룹은 아침에 200, 점심에 500, 저녁에 700칼로리를 먹게 해 12주 동안 실험을 한 결과 아침을 든든하게 먹은 그룹은 저녁을 든든하게 먹은 그룹에 비해 하루 종일 허기(공복감)를 덜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식욕촉진호르몬인 그렐린의 수치를 조사한 결과 예상대로 아침을 든든하게 먹은 쪽이 하루 종일 더 낮았다.


다이어트 효과는 아침을 든든하게 먹은 쪽이 몸무게가 평균 8.7㎏ 준 반면 저녁을 든든하게 먹은 쪽은 평균 3.6㎏ 빠지는데 그쳤다. 즉 같은 음식을 같은 양 먹는 다이어트도 하루 중 언제 얼마나 먹느냐에 따라 효과와 지속가능성에 큰 차이가 난다는 말이다.

 

특정 음식의 소화 속도와 흡수율은 개인에 따라서 차이가 크다는 사실이 최근 밝혀지고 있다. 따라서 다이어트 식단 역시 

개인에 맞춰 짜야 효과가 크고 꾸준히 실천할 수 있다. - 위키피디아 제공


나에게 맞는 식단 짜야 성공

필자들이 글의 제목에 ‘복잡한(messy)’이라는 수식어를 붙인 또 하나의 이유는 개별 음식이 공복감이나 식욕에 미치는 영향이 사람에 따라 다르다는 사실이 최근 밝혀지고 있기 때문이다. 즉 영양학 교재에 나와 있는 음식들의 혈당지수는 평균값일 뿐 개인에 따라 그 폭이 크다. 이는 사람마다 소화효소 유전자의 유형과 발현량이 다르고 영양 섭취의 한 축을 담당하는 장내미생물의 조성도 다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바나나와 쿠키의 경우 언뜻 생각하면 바나나가 혈당지수가 낮을 것 같지만 그 반대인 사람도 있다. 심지어 사람에 따라서는 흰빵보다 통밀빵이 혈당지수가 더 높기도 하다.


지난 2015년 이스라엘의 연구자들은 참가자 100명에게 각종 음식을 먹게 해 혈당지수를 측정한 뒤 이를 토대로 각자에게 좋은 식단과 나쁜 식단을 짜 일주일은 좋은 식단을 일주일은 나쁜 식단을 제공했다. 그 결과 좋은 식단을 먹었을 때는 혈당관리가 잘 됐지만 나쁜 식단을 먹었을 때는 엉망이 됐다. 다이어트 식단도 마찬가지 아닐까.


비만인 사람들을 모아 엄청난 운동량과 엄격한 식단관리로 수 주 사이에 체중을 극적으로 줄이는 프로그램이 잊을 만하면 방영된다. 참가자들은 그 과정이 너무 힘들어 엉엉 울기도 한다. 필자가 방송사 PD가 돼서 이런 식상한 포맷 대신 위에 언급한 최신 연구결과를 검증하는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상상을 해본다. 만일 이런 연구결과가 재현된다면 다이어트의 패러다임을 바꿀 수 있지 않을까.


※ 필자소개

강석기. 서울대 화학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했다. LG생활건강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했으며, 2000년부터 2012년까지 동아사이언스에서 기자로 일했다. 2012년 9월부터 프리랜서 작가로 지내고 있다. 지은 책으로 『강석기의 과학카페』(1~4권, 2012~2015),『늑대는 어떻게 개가 되었나』(2014)가 있고, 옮긴 책으로 『반물질』(2013), 『가슴이야기』(2014)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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